또래 어린 투수들이 스피드건에 찍은 구속을 보며 어깨를 들썩일 때 이미 로케이션의 중요함에 대해 '확실하게' 배웠다.매덕스는 마이너리그 루키 시절부터 체인지업을 실전에서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대망의 통산 300승을 거둔 애틀랜타 시절 좌완 동료 톰 글래빈(뉴욕메츠)은 1987년에 입단했는데 1991년이 되어서야 확실하게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었다.
톰 글래빈은 직전 해 10승12패에서 20승11패 투수로 거듭나면서 사이영 상을 수상했다.
체인지업 덕분이었다. 그때부터, 그리고 이후에도 톰 글래빈의 300승 대위업을 달성케한 것은 이 느리게 들어오는 공, 체인지업이다. 빅리그 체인지업의 A부터 Z까지를 살펴봤다.

매덕스와 글래빈의 투구 패턴은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매덕스는 타자가 치고 싶어하는 코스와 구질을 너무 잘 아는 듯한 피칭으로 타자를 농락하는 반면 글래빈은 이미 예정된 코스, 오른손 타자의 바깥 홈플레이트 쪽을 향해 줄기차게 뿌린다.
130㎞ 후반대의 패스트볼과 120㎞안팎의 체인지업이 연속해서 스피드를 바꿔 들어오면 타자가 얼어붙는다. 같은 스트라이드와 같은 투구폼으로 타자의 밸런스를 망가 뜨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끔씩 안쪽으로 들어오는 공에 타자의 머리가 혼돈을 일으킨다. 일명 'OK볼'이라 불리는 서클 체인지업, 스트레이트 체인지업 등 체인지업에는 다양한 그립과 던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모두 다 목적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 직구를 던질때처럼 팔을 휘두르는게 제1과 제1장이다.
▲명약-OK
구속이 빠르지 않고 체격이 좋지 않은 선발투수에게 체인지업은 명약이다. 대개 좋은 선구안과 커트 능력을 지닌 상대팀의 톱타자에게 공 10개 정도 직구와 커브 조합으로 상대하다 볼넷을 내주면 순차적으로 후속 타자가 아웃되더라도 결국은 4번타자까지 일단 상대해야 한다.
이때 병살 유도를 위해서는 체인지업이 딱이다. 상대적으로 아마야구 시절부터 대다수 투수들이 직구+커브, 직구+슬라이더 조합의 투구 패턴을 갖추다보니 체인지업을 일찍 익히는 투수가 유리하다.
타자들 대부분이 변화구중 ▲커브를 노려치거나 ▲슬라이더를 노려치는 타자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끌어 당겨치는 타자들, 스트라이드를 넓게 하는 홈런 타자들에게 효과는 더 배가 된다. 넒은 스트라이드는 순간적으로 체중 이동이 힘들어져 타자를 얼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병통치약-NO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인지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글래빈은 2003시즌에 앞서 이른바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 판별 및 평가를 위한 퀘스텍시스템(컴퓨터로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판정해 주는)이 메이저리그에 도입된 뒤 바깥쪽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지 않아 크게 고전한 바 있다.
이후 공이 조금이라도 가운데로 몰리는 족족 장타를 허용했고, 메츠 이적후 그는 2시즌 동안 20승28패, 5할 승률도 거두지 못하는 참담함을 맛봤다.
톰 그래빈은 이후 자신의 공 로케이션을 좀 더 다양화 하고 예전에 많이 쓰지 않았던 커브를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서 부활했다. 항상 타자의 무릎 위로 그리고 배트 끝이 아니라 가운데로 몰리는 체인지업은 그저 치기 좋은 직구에 불과한 사례이다.
특정상황, 특정 볼카운트에서 체인지업을 '전가의 보도'처럼 던져도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가장 금기되는 사항은 한차례 타자의 눈속임을 위해 의도적으로 폼이나 팔 동작을 빨리 해 체인지업을 뿌리는 케이스다. 타순이 한번 돌면 투수의 의도를 알아차린 타자들이 배팅볼처럼 때려낸다.
▲[TIP] 체인지업 어록
"나는 세 종류의 공이 있다. 체인지업, 그 체인지업을 다시 체인지업한 것, 다시 그 공을 한번 더 체인지업한 것" (프리처 로, 12년간 통산 127승을 기록한 전 브루클린 다저스 투수. 로는 1951년 36세 나이에 체인지업으로 22승3패를 기록했다.)
"더 세게 던지려면 던질 수록, 바보가 될 수 있다. " (90년대 중반 휴스턴 주축 투수 더그 존스, 1982년 데뷔 이후 통산 250세이브 달성)
"내 구속은 기껏해야 평균이다. 그래도 스피드 바꿔서 원하는 공에 던질 수 있는 능력으로 어떤 상황의 게임에서든 내가 던질 수 있게 해줬다." (톰 글래빈- 1995년 월드시리즈 6차전 1안타 승리 투수가 된 뒤)
김성원 기자[rough1975@je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