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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게 묻는다Ⅱ]최향남의 '차가 식기 전 경기를 끝내는 법'

해머41 2008. 7. 15. 17:35
입력 : 2008-06-30 11:12:15
▲ 최향남 (사진=롯데자이언츠)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때 빠른 배달을 모토로 인기를 끌었던 배달원 번개에 얽힌 이야기 중 이런 것이 있었다. "번개에게 주문하고 담배피지 마라. 채 담배 끄기 전에 자장면이 온다."

2008년 한국 프로야구에도 쉽게 담배 태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선수가 있다. 롯데 새 마무리 투수 최향남(37)이 주인공이다.
팬들은 그에게 '향운장'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조조가 내린 술이 식기 전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는 관우의 일화에서 따 온 별명이다.

답은 이미 나와있다
마운드에 선 최향남은 주저함이 없다. 초구는 대부분 직구고 또 대부분 스트라이크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단 2분만에 1이닝을 마치고 내려갔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왜 그렇게 빠른 승부를 펼치는 것일까. 최향남은 유독 "답"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 속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답이 뻔히 나와있기 때문이다. 우선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야 승부가 유리해진다. 불리한 볼 카운트가 되면 안타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초구부터 승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체력이나 볼끝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한다."

돌아가려는 순간 지는 것이다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중요하다는 건 이미 오래 된 이론이다. 최향남이 남들과 달라 보이는 것은 초구의 대부분이 직구라는데 있다.

"변화구를 던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 공이나 밸런스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굳이 변화구를 택할 필요가 있을까. 변화구를 던지더라도 칠 수 있게 던진다. 파울이나 범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유인구? 유인구를 던지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지는 것이다. 투수 입장에서 최고는 가운데만 보고 던져도 타자가 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지금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향남은 그러면서 5월23일 문학 SK전을 이야기했다. 그날 단 12개의 공으로 3타자를 내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끝냈다.

"그날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공을 던진 날이다. 내가 그렇게 찾길 원했던 답이 나온 날이었다. 야구가 어려운 것이 그날 이후 또 조금씩 폼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그때의 80% 이상은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래서 이젠 마운드에 서는 것이 설레인다."

해답을 찾아가는 길
지난해 최향남을 만났을 때 일이 떠올랐다. 최향남은 그때 "지금도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던지고 싶은 공'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최고의 밸런스, 스트라이크 존의 한 가운데로 공을 던져도 타자가 치지 못할 만큼의 볼끝이 그의 목표점이었다.

솔직히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향남은 2006년 트리플 A(버팔로 바이슨스.클리블랜드 산하)에서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어지간한 용병 투수들보다 나은 성적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다 여겨졌다.

게다가 그는 지난해 롯데와 최대 3억 8,000만원(플러스 3억원 마이너스 8,000만원)의 옵션 계약을 했다. 1승이 곧 돈이었다. 최향남은 결국 지난해 5승12패 방어율 5.00에 그쳤다.

"2006년 정도 던지는데 만족했다면 그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고 돈도 좀 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트리플때 잘 했지만 나랑 비슷한 실력이면 어린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더라. 결론은 그때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잘 던져야 한다는 목표가 있는 만큼 노력해야 했다. 팀에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꿈?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메이저리그를 접지 않은 것일까. 최향남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꿈 꾸는데는 돈이 안들지 않느냐. 덕분에 더 노력할 수 있어 좋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단,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가 끓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다. 최향남은 "지금 롯데팬들은 최고다. 여기서 야구하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힘을 빼야 힘을 준다
슬몃 그가 찾은 답이 궁금해졌다. 확실히 지난해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향남의 구속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었다. 직구 평균 구속은 140km를 조금 넘을 뿐이다. 그러나 타자들의 스윙은 이미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간 뒤 돌아나오기 일쑤다.

"결국 공을 던지기 전 힘을 한번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힘껏 던지려다보니 팔을 회전할때부터 릴리스 포인트에서 놓을때까지 계속 힘이 들어갔었다. 나는 100%로 던지는데 타자는 쉽게 받아쳤다. 하지만 최대한 회전에서 탑 포지션(공을 드는 위치)까지를 편하게 가고 힘을 한번 빼야 릴리스 포인트를 끌어가며 공에 힘을 줄 수 있더라. 간단한 듯 하지만 그 밸런스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렵다."

훈련 VS 훈련
김성근 SK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야구 스타일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훈련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지옥훈련의 SK와 자율 훈련의 롯데는 지난 겨울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최향남은 그 두 감독의 훈련을 모두 경험해 본 선수다. "어떤 방식이 옳은 것일까"라는 우문에 그는 현답을 내 놓았다.
"결국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훈련 속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분명한 목표와 이유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왜 하는지 뭘 위해 하는지 모르고 하면 아무리 많이 해도 소용없다. 그걸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SK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을 잘 알고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도 지난해 마무리캠프때도 많은 공을 던졌다. 연습 경기에도 나갔고 끝나고도 비닐 하우스에서 400개 500개씩 던졌다. 내가 원하는 밸런스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젠 그 부분을 확실히 알게 됐으니 조절을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