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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게 묻는다Ⅱ]김재현의 '머니볼 타자'로 거듭나는 법
해머41
2008. 7. 15. 17:52
입력 : 2008-06-09 12:34:36 | ||||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머니볼 이론'은 빌리 빈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단장의 성공 이후 메이저리그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여러가지 핵심 이론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는 이제 타자의 능력을 저울질하는 데 있어 타율 못지 않은 통계로 쓰이고 있다. SK 김재현(33)은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머니볼 형' 타자다. 언제든 한방이 터져나올 수 있는 장타력에 빼어난 선구안을 더한, 많이 나가고 멀리 치는 타자의 전형이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타자 중 꿈의 조합이라 불리는 3-4-5, 즉 3할타율과 4할대 출루율, 그리고 5할대 장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다.
야구 선수 김재현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20세기의 김재현과 21세기의 김재현이 전혀 다른 선수이기 때문이다. 1994년 LG에서 데뷔한 김재현은 그해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20-20 클럽(21홈런 21도루)을 달성한 호타 준족형 선수였다. 타율은 2할8푼9리에 그쳤지만 아쉬울 것 없을 만큼 호쾌한 타격을 선보였다. 그러나 김재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3할을 조금 밑도는 타율에 두자릿수 홈런. 꾸준히 A급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뭔가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리고 2000년. 21세기가 되며 김재현은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홈런수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타율과 출루율이 부쩍 상승했다. 좀처럼 쉽게 아웃되지 않는 끈끈한 무언가를 타석에서 남기기 시작했다. 진짜 '머니볼 타자'가 된 것이다. 김재현은 "예전에는 그냥 상대 투수만 생각하고 공 보고 공 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다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홈런 타자의 야구를 하는데는 내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탑(TOP)이 될 수는 없지만 팀의 진짜 중심선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타격 에버리지를 높이고 찬스에 잘 치는 타자,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준혁 그리고 김성근 감독 김재현은 공부했다. 좀 더 나은 타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김재현은 "선배들에게 직접 들었다기 보다는 눈으로 보면서 배웠다. 잘 하는 선배들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며 컨디션이 나쁠 땐 어떻게 치는지 등을 익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중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선배가 바로 양준혁(삼성)이다. 당시 해태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양준혁은 김재현에게 좋은 교과서가 됐다. 양준혁의 철학인 "1경기에 안타 1개 볼넷 1개"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루에 안타와 볼넷을 한개씩 얻어내기 위해선 매 경기 집중력을 잃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꾸준한 몸관리가 없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김재현은 "준혁이 형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컨디션이 안 좋을때와 좋을때 스윙을 가져가는 방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 부분들을 내 스타일에 맞춰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김성근 감독과 만남은 김재현에게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01년 LG 감독 대행으로 취임한 김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담금질했다. 특히 2001시즌이 끝난 뒤부터 2002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까지의 기간은 그 어떤 LG 선수들도 겪어보지 못한 지옥 훈련이 계속됐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김재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맡겨진 훈련량을 소화했다. 오히려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스스로 나서 먼저 방망이를 잡았다. 왜? 답은 간단했다. "한번쯤 내 한계에 부딪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보다 나아진 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만큼 도전해 볼 필요가 있었다."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던 김재현에게 김성근 감독의 지옥 훈련은 때마침 내린 단비였던 셈이다.
▲선구안의 비밀 선구안은 타자들의 재산 밑천이다. 선구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타자가 될 수 없다. 불과 1년새 출루율을 1할 가까이 끌어올린 경험을 지닌 김재현에게 그 만의 해법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체다. 상체가 떠 있으면 그만큼 몸의 움직임이 많아지면서 공을 보는 것이 힘들다. 하체를 최대한 땅에 박아두고 칠 수 있도록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웠다. 그러면서 공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생기게 됐다. 두번째는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이다. 투수별로 커브의 각이 어느정도인지 포크볼은 떨어지는 건지 밀려 들어오는 건지 등을 파악하고 기억해 둬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높이에 오는 건 치고 그 보다 낮은 건 버린다던가 하는 노하우를 갖게 된다. 볼 끝이 있는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낮게 봐야 한다. 실제로 살아오는 볼은 없지만 시각적으로 그렇게 보이는거니까 그런 공 던지는 투수는 벨트 높이보다 좀 낮게 존을 형성해 둬야 한다." 김재현은 선배 투수 김정수(전 KIA 코치)의 예를 들었다. "김정수 선배는 약간 스리쿼터로 나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오픈 스탠스로 서서 쳤다. 다른 투수와 똑같이 치면 몸 뒤에서 돌아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도망가면서 치게 된다. 싱커 좋은 투수라면 조금 앞에서 치고 볼이 빠르면 뒤에서 친다는 식으로 변화를 가져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NO라고 할지라도... 김재현은 고관절 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지나간 일인만큼 그 이야기에 더이상 얽매이기 싫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모두가 안된다고 했을때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나요? 또 두렵진 않았습니까?" 당시 100명 중 99명은 김재현의 재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재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건 남이 안된다고 해서 그걸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한번은 해보고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선 많이 걱정했지만 전문의가 된다고 했고 나 스스로도 포기하기 보다는 우선 한번 시도는 해보고 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내가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것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