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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게 묻는다Ⅱ]홍성흔의 '냉정과 열정을 조율하며 사는 법'

해머41 2008. 7. 31. 23:57
입력 : 2008-07-21 12:02:12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두산 홍성흔(33)의 신인 시절 이야기다. 심심찮게 독자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강남 모 나이트클럽에서 홍성흔을 봤다." , "내가 압구정동에서 여자랑 지나가는 걸 봤는데..."

처음엔 솔깃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됐다. 그의 삶을 조금씩 알게되면서 부터다. 나쁜 소문들도 이내 사그러들었다.

홍성흔은 오해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그라운드에서 발산하는 넘치는 끼에 잘 생긴 외모, 여기에 대학시절 화려한 춤사위로 모 오락프로그램에서 장기자랑 대상을 거머쥔 이력까지 더해지면 상상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산다. 끓는 피를 다독일 수 있는 냉정을 가슴 속에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자신의 자리를 꾸준하게 지켜낸 지금의 홍성흔을 만들어낸 비결이다.
▲ 홍성흔 (사진제공=두산베어스)
▲내가 파이팅을 내는 이유
'오버더 턱','육바' 모두 홍성흔을 가리키는 별명들이다. 그만큼 홍성흔과 파이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파이팅이 터져나와 주위를 놀라게 했을 정도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당시 홍성흔은 경희대 4학년)서 처음 호흡을 맞췄던 LG 투수 최원호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갑자기 마운드에 오더니 파이팅을 내더라.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다. 어찌됐건 투수를 기분 좋게 해주는 포수였다"고 말했다.

홍성흔은 "언제부턴가 내가 파이팅을 내면 투수들이 더 집중하게 된다는 걸 느꼈다. 같은 공을 받아주더라도 "낮게 낮게"라고 소리도 쳐 주고 좋은 공이 왔을때 신나게 소리도 쳐 주면 투수들의 공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더 오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파이팅은 팀에 큰 힘이 됐다. 서정환 전 KIA 감독은 "이제 덕아웃 리더는 홍성흔 처럼 밝은 선수들의 차지"라고 말한 바 있다.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안경현도 "성흔이가 있을때와 없을때의 차이는 정말 크다.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홍성흔의 공을 인정했다.

물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이젠 오버에도 노하우가 쌓였다고 했다.

홍성흔은 "TV로 내 모습을 보다 창피한 적도 많았다. 너무 아무때나 나섰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젠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고 있다"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108배에서 얻은 깨달음
홍성흔은 불교신자다. 그저 급할때만 찾는 나일론 신자가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 진짜배기다.

잘 생긴 외모의 신체 건강한 운동선수에게 '유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한참 피가 끓는 스무살 무렵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홍성흔은 달랐다. 돈과 명예를 한손에 거머쥔 프로 입문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학때도 그랬지만 프로에 들어오니 이런 저런 유혹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런 유혹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대학때부터 그랬다. 물론 다른 선수들과 어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 열잔 마실때 다섯잔만 마시고 열번 갈거 한번만 가면서 조절을 했다."

그냥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이 절대 아니다. 홍성흔에게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대학시절 하루는 내가 잘 가는 절의 스님이 108배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매일 108배를 하라고 하셨다. 안타 치게 해달라거나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지 말고 그냥 하라셨다. 그때부터 3년간 매일 밤 그 약속을 지켰다. 솔직히 몇번 빼 먹은 날도 있었지만 108배를 하면서 달라지는 나를 느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달라졌다."

건강이나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선 하체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의 밸런스가 잡히고 살이 빠지는 효과까지 있었다고 자랑했다. 종교를 떠나 꽤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 홍성흔 (사진제공=두산베어스)

▲3번의 3000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로 유명한 성철 스님(1993년 열반)은 3000배를 한 신자에게만 친견(직접 만남)을 허락했던 걸로도 이름이 높았다. 왜 3000배였을까.

3000배는 일반인이 하려면 약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중간에 한번씩 법당을 도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다. 보통은 108배만 해도 다리가 풀린다. 3000배는 결코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000배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3000배가 끝나면 무념 무상의 백지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애초에 무언가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셈이다. 욕심이나 고민이 남아있지 않는 깨끗한 상태. 어쩌면 성철 스님이 원한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홍성흔은 지금까지 모두 3번의 3000배를 했다. 흥미로운 것은 3000배에 도전했던 시기다. 1999년과 2001년,그리고 2004년 음력으로 마지막 날, 홍성흔은 밤을 새워 기도를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신인왕을 따고나서, 우승을 하고 나서, 최다안타왕을 하고 나서, 이렇게 3번 3000배를 했다. 내가 자만하며 붕 떠서 지내게 될까봐 그랬다. 뭘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다스리기 위해 도전했다."

홍성흔의 이런 삶은 함께 사는 아내(김정임씨)에게도 놀라움 그 자체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들어와 잠들기 전 반드시 명상을 하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남편은 놀라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김씨는 "비시즌때 부부 동반 모임에 가서도 생각보다 자리가 길어지면 싫어한다. 한번은 가라오케에서 그냥 자 버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타자 홍성흔
홍성흔의 타격폼은 기본기와는 거리가 있다. 크게 퍼져나오는 그의 스윙은 현대 야구에서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홍성흔의 타격 자질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수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타석에서 더욱 좋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지명타자로 나서고 있는 올시즌 타율 3할3푼1리를 기록하며 이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특히 다른 상위권 타자들이 4할에 육박하는 성적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형국인 반면 꾸준히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홍성흔은 "나는 타격이 좋은 타자가 아니라 집중력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 팀이 꼭 필요로할때 한방을 쳐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포수를 할때는 4타수 무안타를 쳐도 팀이 이기면 상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타격이 안되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선다. 주자가 있을때 어떻게든 안타를 쳐낸다는 집중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