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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달인에게 묻는다]박재홍의 절박함 깨달은 천재가 사는 법

해머41 2008. 9. 1. 12:23

[달인에게 묻는다-천재편]박재홍의 절박함 깨달은 천재가 사는 법
입력 : 2008-09-01 11:43:33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박재홍(35.SK)은 '리틀 쿠바'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됐지만 한때 한국 야구에서 '쿠바'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박재홍만은 달랐다. '박재홍이라면...' 쿠바와 상대해도 제 몫을 해줄 수 있을 거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만큼 박재홍은 잘 치고 잘 달렸다.

박재홍이 늘 최고였던 것은 아니다. 분명 잘 하기는 했지만 '예전만큼의 폭발력은 없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2008년 박재홍은 다시 첫 손 꼽히는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천재성 외의 무엇인가가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 야구가 제일 쉬웠어요
박재홍은 신인시절 이야기를 하며 가장 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당시를 "야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박재홍은 "그땐 내가 생각해도 몸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공 보고 공 치는데도 잘 맞고 크게 뻗어갔다. 정말 힘든지도 모르고 야구했고 그저 즐거웠다. 그러다보니 야구가 너무 쉽게 보였다. 안되면 내일 하자. 모레 나가서 안타 몰아치면 되지 하며 여유가 넘쳤다"고 말했다.

순간 이런 의문이 한가지 들었다. 그런 그에게도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있었을까.

박재홍은 주저 없이 "이강철 선배(현 KIA 코치)"라고 답했다. "언더핸드였음에도 공이 빨랐고 타이밍 잡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박재홍은 꽤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프로 입단하고 3년째인가... 강철이형 공을 연타석으로 홈런 친 적이 있다. 그런데 이후에 또 못 쳤다. 그 이유는..."

▲천번 휘두르며
김성근 SK 감독은 지옥 훈련으로 유명하다. 장마로 사흘 연속 경기가 취소되자 시즌 중임에도 선수당 1,000번의 스윙 훈련을 시켰다는 것이 가장 최근의 일화.

혹자는 김 감독 훈련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많은 스윙이 반드시 기술의 진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유다.

이유 있는 지적이다. 일정 수준에 올라온 선수들은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다. 더 많이 친다고 한순간에 달라지는 것이 있을거란 기대는 하기 어렵다.

한국 야구의 대표 천재 박재홍에게 물었다. "하루에 천개 이천개씩 치며 얻어지는 것이 있나요?" 박재홍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기술이 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마인드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안되는 것도 되고 되는 것도 안되는 거라 생각한다. 많이 치다보면 기술적으로도 느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비오듯 땀을 흘리며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쉼 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느낀다.

죽어라고 방망이를 휘두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제 첫타석 카운트 1-1에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쳤어야 했는데... 그럼 좋은 타구를 만들고 게임 상황이 이렇게 변했을텐데.. 라는 답에 이르게 된다.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 만큼 절대 후회를 남겨선 안된다는 독기를 품게 된다. 그냥 무의미하게 훈련만 하고 나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마음들이 다음 경기에서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이제 조금 전에 했던 '이강철' 이야기의 답을 할 차례다. 박재홍이 끝내 이강철의 벽을 넘지 못했던 이유는 이랬다.

"연타석 홈런을 치기는 했는데 어떻게 하다 칠 수 있었는지 몰랐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에도 또 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또 못 쳤다. 그래도 조급하지 않았다. 강철이형 볼 못쳐도 다른 투수 볼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타율 3할을 치고 두자릿수 홈런을 쳤다. 굳이 고민할 필요가 뭐 있나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3할,두자릿수 홈런) 쉽지 않더라. 그리고 2007년이 내게 다가왔다."
 
(사진제공=SK와이번스)
▲절박함에 대하여
박재홍은 절박해 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그의 말 처럼 오늘 아니면 내일, 그것도 아니면 모레라도 쳐낼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며 박재홍은 조금씩 약해졌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한단계씩 내려앉고 있었다. '박재홍'이란 이름 석자가 주는 위압감이 하루 하루 줄어들었던 이유다.

2007년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을 요구했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절망스런 순간이었다.

"안그래도 야구가 조금씩 어려워지려는 순간이었다. 오늘 못 치면 내일 못 나갔다. 수비도 그랬다. 나는 어떤 경기에서건 한 타석이라도 더 치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 하지만 수비 더 잘하는 후배들이 나타나니 7회 이후엔 교체되기 일쑤였다. 절박하다는게 뭔지 절실히 느끼게 됐다."

그리고 박재홍은 매너리즘을 이야기 했다. "야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종목이다. 어느정도 올라오면 한동안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절박함이 생기면 다시 도전하게 된다. 잘 안됐을 때 겸허히 받아들이니 진정이 되더라. '내일 또 가서 해보자'하며 자꾸 마음을 순화시켰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바뀌어야 했다. 안 내보내주면 내게서 문제를 찾게 됐다. 연습할 때도 진지해지고. 캠프 때 누구보다 수비 훈련도 이 악물고 했다. 후배들이 수비 잘하는 건 인정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노장에게 목표란?
박재홍은 우리 나이로 서른 여섯살이다.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그는 이제 노장이란 표현을 신경써야 할 나이가 되고 있다.

그래도 박재홍이라면 뭔가 다른 거창한 꿈이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에선 둘째라가면 서러울 그이기 때문이다. 허나 박재홍은 짐짓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 내가 따르는 형님과 이야기를 하다 "(양)준혁이형이 기록 많이 세우고 있는데 은퇴 전에 한번 도전해봐야죠"라는 얘길 했다.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분이 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넌 그런 목표 갖고 뛰면 안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으면 좋겠다."

그때 또 한번 반성을 했다. '아, 내가 또 쉽게 생각하려 하는구나...' 물론 300(홈런)-300(도루)는 꼭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끝까지 뛰는 것이다. 난 노장이 아닌 것 같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잘 하고 있지 않은가. 끝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고 떠날 때 박수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