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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후(是非吟)시비음

<是非吟> 조선문인 허후許厚  
   시   비   음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시     비  진  시    시   환   비            부  필    수  파   강  시   비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각   망    시  비   고   착   안              방  능  시   시    우   비  비 
         
옳음이 참옳음이 아니고 옳음이 때로는 그름일 수도 있으니
물결 따라 억지로 옳고 그름을 가릴 것도 없는 일
옳고 그름을 잊고 눈을 높은 곳에 두어야
비로소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다네 
이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옳다고 하는 것이 그른 것일 수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른 것이 옳은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의 기준 자체를 배제하고 한 차원 높은 곳에 눈을 돌려봄 직하다.
옳고 그름의 다툼이 없는 곳에 절대선絶對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출처: 거제도 지세포중학 19회동창회 카페)

어제 아시는분과 술을 마시다가 그분이 나에게 알려준 조선시대문인 허후의 한시를 검색하여 올려봅니다. 이 한시로 다른이에게 편지를 �다고 하네요.  직설적인 말보다는 빗대어 풍자하는 풍류도 잊혀져가는 요즘시대입니다. 디지털세상이지만  아날로그도 필요합니다. 가끔 지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예전 편지를 주고받으며 기다림이 즐겁고 빠름보다는 느림이 주는 여유가 있었나 봅니다. 

 ☞ 허후 許厚(1588~1661)
17세기 대학자 허목(許穆)의 형.
조선 : 중기의 문신.
본관 : 양천(陽川).
자 : 중경(重卿).
호 : 관설(觀雪) ·돈계(遯溪) ·일휴(逸休).

1623년 (인조 1)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장 김창일(金昌一)을 도와 공을 세우고,
          난이 끝난 뒤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에 임명되나 사양하였다.
1633년 사도시주부(司오寺主簿)를 거쳐 지평현감(砥平縣監)이 되어
          법을 엄중히 다스렸으나, 남살(濫殺)한 죄로 한때 투옥되었다.
          그 뒤 의성현령이 되고 형조, 공조의 좌랑, 은산현감을 거쳐
1644년 세자익위사좌익위(左翊衛)가 되었다.
1656년 (효종 7) 지평(持平), 장령(掌令), 부사(府使) 등에 임명되나 사양

          하였고,
1659년 (현종 즉위년) 장악원정(掌樂院正)이 되었다.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서인(西人)의 기년설(朞年說:1년)을 반대하고,
남인으로서 3년설을 주장하였다.
글씨에 능해 전서(篆書), 주서(譜書)에 뛰어났다. 원주의 도천서원(陶川書院)에 배향되었다.문집에 《돈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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