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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ARTICLE

달인에게 묻는다Ⅱ] 이영우의 '3할 본능 되찾는 법'

입력 : 2008-06-16 11:16:00
▲ 이영우 (사진제공=한화이글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화 이영우(35)는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해 복귀했다. 성적은 참담했다. 2년차이던 1997년 이후 최악인 2할3푼8리의 타율로 추락했다.
주위에선 "서른이 넘은 나이에 2년간의 공백은 치명적"이라고 수군거렸다. 다시 제 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거란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영우는 다시 일어섰다. 16일 현재 타율 2할9푼을 기록 중이다. 왼 어깨 수술로 사실상 아직 재활중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이영우는 '리그의 대표적인 저평가 선수'로 불린다. 이렇다 할 타이틀도, 개인상도 타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피 속엔 '3할 본능'이 살아 숨쉬고 있다. 2년의 공백을 넘어 다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이유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영우는 지난해 시범경기서 맹타를 휘둘렀다. 그러나 정작 시즌에 들어간 뒤에는 맘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2할대 초반의 타율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이영우는 이에 대해 "준비가 부족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한국 프로야구 수준도 그 사이 크게 발전했더라"고 말했다. 특히 투수들의 기량 향상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2004년까지는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스플리터)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투수들이 많지 않았다. 슬라이더나 드롭성 커브는 수준급이었지만 지금처럼 종으로 꺾이는 변화구는 위력적인 투수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대부분 투수들이 주무기로 활용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영우는 변신을 택했다. 이전보다 자세를 낮추고 보다 뒤에 중심을 두는 것이 포인트였다. 공과 시선을 맞히기 위한 선택이었다. 
"종으로(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공은 타자를 속이기 위한 것이 많다. 그런 공에 대응하기 위해선 공을 낮게 보는 것(낮은 공에 속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좀 더 자세를 낮춰 공을 보는 높이를 조절했다." 
바꿔 풀이하면 이전보다 공격 포인트를 높였다는 뜻이다. 옛날에 치던 포인트에 오는 공의 대부분은 정작 치려고 할 땐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구 공격의 미학
이영우는 초구 공격의 대가다. 흔한 말로 초구도 비슷하면 바로 스윙이 나온다. 올시즌 0-0부터 2-3까지 12가지의 볼 카운트 중 가장 많은 40번(17%)의 공격을 초구에 했다. 
주로 톱 타자로 활약해 온 그에겐 쉽게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자칫 위험해보이기 까지 한 초구공격엔 어떤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1997년 애리조나 교육리그를 갔을때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 선수들은 죄다 초구부터 공격을 했다. 코치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여기에 있는 선수들은 메이저리그를 가기 위해 준비중이다. 그러기 위해선 직구를 치는 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하더라. 모든 스윙을 직구 타이밍에서 시작한다. 변화구는 스윙이 나오면서 대응하는 방식이다. 내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순간이었다."
 
이영우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감독님들이 투수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져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공격할 땐 "초구부터 그렇게 막 나가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투수들도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공을 놓친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선배들 얘길 들어보면 예전 해태 선수들이 두려웠던 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쳤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특히 요즘처럼 투수들의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놓쳐 볼카운트가 1-0이 되면 크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나만의 방식이 3할을 만든다
이영우는 '상식적인' 타자가 아니다. 몇년전만 해도 환영받지 못했던 초구 공략이 많은 것도 그렇고 타격폼도 이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영우는 그럴수록 더욱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타석에서 많이 웅크리고 있는 편이다. 기본은 상체를 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회전을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만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 내 몸이 웅크리는 것이 맞는다면 어느정도 단점이 있더라고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적극적인 공격을 하다보니 삼진이 많다. 톱타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삼진이 많고 볼넷이 적다고 팀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내 기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영우는 삼진이 많은 편이다. 특히 2000년과 2002년에는 각각 91개와 103개의 삼진을 당했다. '무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숫자다. 이 정도 삼진은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거포들의 성적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해 이영우가 기록한 출루율이다. 이영우의 2000년 출루율은 3할9푼2리, 2002년은 4할1푼5리(3위)였다. 누구보다 많이 베이스에 나가 팀에 공격기회를 만들어준 셈이다.
 
이영우는 "삼진이 많아지더라도 적극적인 공격이 내겐 안타를 많이 칠 수 있는 방법인 만큼 내 스타일을 유지했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삼진을 당하면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깊은 인상이 남는다. 하지만 다른 찬스에선 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억에 크게 안 남았을 뿐이다. 보여지는 것이 두려워 내게 맞는 방식을 버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