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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ARTICLE

너클볼에 대하여(스포츠서울-퍼온글)

◆ 너클볼의 정의

'너클(Knuckle)'의 사전적 의미는 '손가락 관절'이다. '주먹(The Knuckles)'이란 다른 뜻도 있다. 공을 잡는 그립이 손가락을 구부려 찍는 모양이고 전체적으로 주먹을 쥔 생김새와 비슷해 '너클볼'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투수의 모든 구종은 손목을 채 회전을 주지만 너클볼은 찍은 상태로 밀어 던져 회전이 거의 없다.

'야구의 물리학' 저자인 로버트 어데어 예일대 물리학과 명예 교수는 " 공의 회전을 극도로 줄이면 솔기(실밥)의 비대칭으로 인해 힘의 큰 불균형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궤적이 아주 이상해진다 " 고 정의했다. 야구에서 빠른 공을 비롯한 변화구 전부는 회전의 정도와 공기 저항력. 그리고 중력의 법칙에 통제를 받는다.

야구 공은 크게 두 면으로 나뉜다. 한 면은 실밥. 다른 면은 매끈한 가죽이다. 이론상 공기 저항은 매끈한 면에서 보다 많이 일어난다. 속구의 경우 회전 수가 높을수록 위력적인 이유는 두 면의 교차 시간이 빨라 공기 저항력의 개입이 작기 때문이다. 다른 변화구 또한 각각의 그립과 회전력을 앞세워 이 힘에 맞선다.

반면 너클볼은 공기 저항에 공을 맡긴다. 매끈한 면의 저항력이 더 심하지만 회전이 거의 없기에 실밥 면의 저항력과 충돌해 비대칭 현상을 만들어낸다. '희귀 구종 분석가' 미조타 다케토 후쿠오카 공대 교수가 분석한 너클볼 궤적은 아래 그림과 같다. 공의 크기가 작은 것은 포수 시점에서 볼 때 오른 편. 큰 것은 왼 편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좌우로 흔들려 보인다. 너클볼의 비대칭 원리다.

◆ 너클볼의 종류

너클볼의 기본 그립은 검지와 중지를 구부린 뒤 공에 찍고 다른 손가락은 감싸는 모습이다. (상단 사진 참고·필 니크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너클볼러 중 한 명인 니크로는 약지까지 포함시켰다. 손가락 '지(指)'를 사용해 전자는 '2지형'. 후자는 '3지형'으로 분류한다. 니크로는 선수 시절 3지형 그립 공개를 꺼려 대부분 2지형 컷만 촬영했다. 마일영 역시 그립 공개는 " 영업 비밀 " 이라며 거부했다.

2지형과 3지형은 제구와 위력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잡기 용이한 2지형이 컨트롤은 쉽지만 구위가 약하다. 현역 가운데 너클볼러로서 가장 유명한 팀 웨이크필드(보스턴 레드삭스)의 그립은 독창적이다. 웨이크필드는 엄지와 약지로 공을 잡고 중지를 강하게 찍는다. (아래 사진) 그러나 검지는 공에서 떨어져 있다. 중지로만 미는 셈이다. 최상급 악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그립이다.

◆ 너클볼의 역사

야구의 역사도 명확지는 않다. 191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블랙 삭스 스캔들'에 연루돼 영구 추방된 에디 시카티가 최초의 너클볼러란 설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 1908년 '뉴욕 프레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루 모렌을 너클볼의 창시자라고 보도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두 선수는 진정한 너클볼러는 아니었다.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원조는 더치 레나드다. 1933년 만 24세의 나이로 브루클린 다저스(현 LA)에 입단한 레나드는 2년차 시즌에 14승 투수로 올라섰다. 그러나 어깨 부상을 당해 이후 몇 년 동안은 음지에서 보내야 했다. 레나드가 재기에 성공한 것은 29세던 1938년. 너클볼을 장착한 뒤다. 레나드는 44세까지 뛰었다.

레나드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고 선수로서 장수가 가능한 너클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현역 지속 여부에 위기감을 느낀 일부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너클볼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생각했다. 1990년대 초반 LG 트윈스의 외국인 투수 코치 마틴 패튼은 당시 투수들에게 너클볼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패튼 코치는 교육을 마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 이 공은 '마지막'에 쓰는 구종이다. "

하지만 너클볼에도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니크로는 'ESPN 페이지 2'와의 인터뷰에서 " 어린 나이에 너클볼 투구를 시작한 투수는 나와 호이트 윌헴. 2명에 불과하다. 다른 너클볼 투수들은 나중에 배웠다 " 고 말했다. 윌헴은 " 가정 주부가 공을 던진다 " 는 폄하에도 불구하고 만 49세까지 활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너클볼과 한국 프로야구

'너클볼러'는 전체 투구의 80% 정도가 너클볼인 투수라고 메이저리그 원로들은 말한다. 엄밀히 구분짓자면 현재 세계를 통틀어 너클볼러는 웨이크필드가 유일하다.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에서 전력 제외로 분류된 자레드 페르난데스는 사용 빈도를 줄였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 초창기부터 국내 프로야구는 흉내내는 수준이었다 " 고 말했다. 73년 역사의 일본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너클볼을 구사했던 국내 투수로는 박철순이 있다. 박철순의 군대 선임이기도 한 이종도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 박철순은 너클볼을 던졌다. 그런데 몇 번 타자들에게 맞으니까 관뒀다. 박철순의 너클볼은 속도만 느린 슬로 볼이었다 " 고 회상했다. 박철순은 사석에서 " 내 껀 너클볼도 아니었다 " 며 이 사실을 인정(?)했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마일영과 크리스 옥스프링(LG)이 너클볼을 실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박찬호의 은사이자 너클볼러였던 찰리 허프는 " 너클볼은 어디로 갈지 몰라서가 아닌 상대가 알면서도 던져야 한다는 점이 두렵다 " 고 말했다. 마일영과 옥스프링은 투구 레퍼토리 중 일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자유롭다.

시즌 전 대전 지역 종합지인 '중도일보'는 " 류현진(한화 이글스)이 작년 말부터 너클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 고 전했다. 마일영은 " 프로 초기에는 속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승부가 가능했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맞는다 " 며 야구 수준의 질적 향상을 이야기했다. 마일영이 너클볼러든 아니든. 너클볼을 던질 줄만 아는 투수든. 선수들의 연구하는 자세가 있기에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junghwan@med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