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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ARTICLE

MLB 느린 공으로도 충분하다



노장 투수들이 살아가는 법

이호영 기자 / 2008-08-08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노장 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느린 공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다.
GETTY IMAGES/Multibits.co.kr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이 아마추어 투수들을 고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직구 구속이다. 스카우트들은 대체로 시속 140km는 돼야 프로에도 통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프로야구는 시속 90마일(약 144km)이 일반적인 기준이다. 저스틴 벌랜더, 조엘 주마야(이상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바비 젠크스(시카고 화이트삭스) 같은 투수들은 시속 160km대를 던지긴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왼손 투수 제이미 모이어(46)는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낙제점이다. 공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이어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돋보이는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7월 24일(이하 현지시간) 현재 20번 선발 등판해 120이닝을 던져 9승6패 방어율 3.90의 수준급 투구를 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필라델피아의 세 번째 선발투수로 손색 없는 성적이다.

알고도 못 친다

모이어는 7월 18일 돌핀스타디움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라이벌 팀인 플로리다 말린스전에 선발 등판했다. 플로리다의 엔트리 25명 가운데 17명이 1980년대에 태어났다. 1962년생인 모이어의 눈에는 플로리다 선수단 전체가 조카의 친구들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모이어는 올 시즌 내셔널리그 등록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훌리오 프랑코(50)가 있었다.

모이어는 첫 타자인 핸리 라미레스(25)에게 몸쪽 높은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보다 관중들의 관심을 끈 건 구속이었다. 모이어의 초구는 직구였지만 스피드건에 시속 131km로 찍혔다. 다음에 던진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은 시속 119km밖에 나오지 않았다. 구종은 체인지업이었다.
모이어는 라미레스와 펼친 승부에서 이 2가지 구종만 사용했다. 같은 구종에서는 구속의 변화가 없었다.
모이어는 8구째 몸쪽으로 파고드는 시속 130km짜리 직구를 던져 라미레스를 삼진으로 잡았다. 라미레스는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 경기에서 한 차례 삼진 등 3번 모두 출루 하지 못한 중견수 코디 로스는 “정말 치기 좋은 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직구를 잔뜩 노리고 있었는데 시속 120km 정도 되는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모이어는 이렇게 젊은 타자들을 한 명씩 처리해 6이닝 동안 4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시즌 9승째를 거뒀다. 경기가 끝나고 모이어는 별일 없다는 듯 “그냥 평소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느리게 사는 법

모이어는 130km대 초반의 직구와 날카롭게 꺾이는 커터를 구사한다. 커터는 직구보다 약간 느리다. 직구 못지 않게 위력적인 공은 시속 120km도 채 나오지 않는 체인지업이다.
완벽에 가까운 제구력이 뒷받침 되다 보니 타자들이 쉽게 때려 낼 수 없다. 모이어가 보잘것없는 직구를 갖고도 살아남는 이유다.메이저리그에서 모이어보다 더 느린 직구를 던지는 투수는 단 한 명뿐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팀 웨이크필드(42)다.
웨이크필드는 직구 구속이 120km대에 불과하다. 대신 직구보다 너클볼을 훨씬 더 많이 던진다.
다른 투수들이 변화구를 양념으로 쓴다면 웨이크필드는 직구를 그렇게 던진다. 웨이크필드의 올 시즌 성적은 20경기 선발 등판에 6승7패, 방어율 3.69다.
그레그 매덕스(42,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공도 빠르지 않다. 시속 140km대의 직구가 간간이 들어온다.
매덕스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고루 섞어 던진다. ‘제구력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볼넷 허용이 적은 투수로 정평이 나 있다. 매덕스는 지난해 198이닝, 올해는 124이닝 동안 25개의 볼넷을 내줬다. 내셔널리그에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가장 적은 볼넷이다.
SPORTS2.0
SPORTS2.0 제 114호(발행일 7월 28일) 기사